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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욕단계 선민임을 입증하는 다양한 증거들 2 계시록 19:11-14

서진35 2019. 3. 30. 10:03


김준식목사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느 민족보다 밝고 환한 것을 좋아하는 민족성은 분 명히 천손민족의 표지입니다. 우리 알이랑 민족은 에벨로부터 셈계의 일신신앙을 계승한 욕단계 선민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열매가 아주 뚜렷하게 있습니다. 그것이 배달겨레인 백의민족 (白衣 民族)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배달겨레, 백의 민족(白衣民族)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누구보다 공경하던 한국인의 직계 조상 욕단 족속은 밝고 환한 것을 지 극히 좋아하여 광명의 본원지인 동방의 해 뜨는 땅을 찾아 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 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쪽으로 쉬지 않고 이동하다가 마침내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스발’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밝은 땅에 정착해 살게 된 백성 이 우리 알이랑 민족입니다. 그래서 우리 겨레가 사는 땅을 ‘밝달’이라고 했고 이 밝은 땅에 사는 우리 겨레를 ‘밝달겨레’의 이두분 음이 곧 ‘배달 겨레’인 것입니다. ‘밝달’과 ‘배달’을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밝달의 ‘달’은 땅이란 말인데 그것은 곧 양달이 양지요, 음달이 음지요 빗달이 비스듬한 땅인 것입니다. ‘배달겨레’란 밝은 땅에 사는 겨레란 뜻입니다. 한국인의 조상 욕단은 이 밝고 환 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백성이 밝고 환한 흰옷을 입고 밝고 환한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 항상 제 사하며 삶을 영위하는 신시(神市) 곧 제사장 나라를 건국했던 것입니다.

지나(中國) 사람들은 흰옷은 죽은 옷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검은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주례 (周禮) 의 춘관 사복 조에 이르기를, 역질이나 기근이 크게 들거나 홍수, 가뭄이 들면 임금이 흰 옷을 입는다’ 고 했습니다. 흰옷을 성스럽게 생각하기는커녕 불길한 옷으로 여겼던 중국인의 색 체관이 드러납 니다. 일본인들은 남색을 즐겨 입습니다. 한편 서양에서는 검은 옷은 죽은 옷입니 다. 그러나 우리 는 상복은 물론이고 일상복도 흰옷을 널리 입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한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릅니다. 실로 한국인은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백의를 숭상하고 즐겨 착용해 왔던 백 의 민족입니다.

영국왕립지리학회의 최초 여성회원이었고, 1849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에 네 차례나 우리 나라를 다녀간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1898년에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책을 출간한 그 책에서 한국의 빨래를 묘사하면서 흰옷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한국 빨래의 흰색은 나로 하여금 현성축일(Transfiguration)에 나타난 예수님의 옷에 대해 성 마가가 언급한 ‘세상의 어떤 빨렛 집 도 그것을 그토록 희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게 했다.’(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여기에서 잿물에 담가두었다가 펄펄 끓여서 순전한 흰색을 내게 하는 흰옷 빨래법이 그녀에게 퍽 인상적 이었던 모양입니다. 비숍 여사 말고도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의 흰옷 풍습을 주목하였습니다. 다음은 조선 고종 3년(1866년)에 두 차례, 그리고 고종5년(1868년)에 한 차례 내한한 독일상 인 오페르트의 관측기록이 있습니다.

‘조선 사람의 옷 빛 색깔은 남자나 여자나 대개가 다 희다. 저고리의 빛깔이 맑고 푸른 빛깔일 때 도 있지만 바지 빛깔이 그럴 때는 없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도리어 가지각색 색깔의 옷을 입고 있 는데 가장 흔히 입는 빛깔은 맑고 푸른 색이 아니면 진홍빛이며, 잡색이나 검정 색 옷을 입는 일 은 매우 드물다. 대중이나 시민계층이 입는 의복의 재료는 국내에서 산출된 직물을 다소간 보기 좋게 바래서 만든 무명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나라 사람들이 더 좋고 곱게 손질한 옷감을 만들 어낼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략… 먼 곳에서 보면 그들의 흰 의복은 사랑스럽고 친 근한 인상을 준다(조선기행, 서울:일조각)

우리의 예술에 관해 많은 관심을 표명했던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미술’이란 글에서 우리의 백의풍속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은 흰 색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찌된 연유일까? 이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민족도 많다. 그렇지만 이 처럼 기이한 현상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인이 이렇게 백의를 숭상함은 아득한 옛날부터 그러한 것으로 수천 년 전의 부여 사람과 그 뒤 신라와 고려와 조선의 모든 왕대에서 한결같이 흰옷을 입은 것은 그 때마다 우리나라에 와서 보고간 지나 사람들의 기록에 적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이 고래로 백의를 숭상한 사실 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부여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며, 흰 베로 만든 큰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고 했습니다.

북사(北史)의 ‘열전 고구려조’를 보면 주몽이 도망치다가 세 사람을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때 한 사람은 삼베옷을, 한 사람은 무명 옷을,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부들로 짠 옷을 입고 있다 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입었던 옷들 모두 흰색에 가까운 소색(素色)입니다. 북사와 수서(隋書)의 ‘신라조’에는 복색에서 흰옷을 숭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구당서’의 ‘고구려조’에는 의상과 복식 에서 왕만이 오채로 된 옷을 입을 수 있으며, 흰 비단으로 만든 관과 흰 가죽으로 만든 소대를 쓴 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백성들은 갈(褐)을 입고 고깔을 쓴다고 했습니다. 같은 책 ‘신라조’에는 풍 속, 형법, 의복 등이 고구려, 백제와 대략 같으나, 조복은 흰옷을 숭상한다고 했습니다. 고구려의 민중들의 옷은 흰색에 가까운 소색인 삼베나 무명옷이었다고 합니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흰옷 선호도는 그대로 구한말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흰 옷선호도는 그대로 구한말까지 이어졌던 것입니다. 실로 한국인은 아득한 옛날부터 남녀노소 모 두 똑같이 흰옷을 입고서 생활하였던 독특한 의복문화를 가진 민족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백성 이 흰옷을 입는 이와 같은 특별한 습속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 흰옷은 쉽게 더러워지니 빨래를 자주해야 될 것이요, 또한 자주 빨면 쉬 해어질 것이었습니다. 여러 모로 비 경제적입니다. 그런데도 왜 한국인은 한결같이 흰옷을 숭상하고 백의를 즐겨 입었을까요? 우리 나라는 동양 3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염색 기술과 미적 감각을 소유한 문화민족입니다. 삼베나 마 같은 옷감을 그대로 입을 수 밖에 없는 낮은 수준의 염료기술 때문에 흰옷 선호가 이루어졌 다는 일제 어용 식민 사가들의 간교한 주장은 실로 어불성설입니다. 지나 사람들이 검정 옷을 입은 것과 비교하여 우리가 흰옷을 선호한 것은 민족성의 차이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대 한국인은 천지만물의 주재자가 되시는 분이 ‘빛 가운데 계시는’하나님’이시라고 알고 자기 네들은 그 ‘하나님의 자손’이라고 믿었는데,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광명’을 표시하는 의미로 흰 빛을 신성하게 알아서 밝고 환한 흰옷을 즐겨 입게 된 풍습은 종교적인 이유인 천손민족, 제천사 상에 있고, 어떤 다른 원인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은 빛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의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광명’을 표시하는 ‘밝고 환한’ 흰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고대 한국인은 이 밝고 환한 흰옷을 입고 항상 하늘의 하나님께 천제를 드리며 생활하던 제사장 백성이요 천손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겨레는 빛의 옷인 흰옷을 즐겨 입은 백의민족인 것입니다. 사는 땅도 빛이 시작되는 동방의 끝에 자리잡았습니다. 하늘의 자손이라 믿었던 우리 민족은 흰옷을 숭상해서 일상복은 물론이고 상복으로도 흰옷을 널리 입었습니다. 농사일을 할 때도 흰옷, 전쟁할 때도 흰옷이었습니다. 흰옷은 때가 쉽게 타므로 빨래하기가 힘든 비경제적 색깔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흰옷 선호습관은 고대사회로부터 구한말까지 장구하게 이어지다가 해방 이후 미군 진주와 더불어 양복과 양장의 원색 문화가 대대적으로 몰려 오면서 최근 50년간 퇴색되었던 것뿐입니다.

흰색은 천상의 옷입니다. 성경에는 천사도 흰옷을 입었고, 예수님이 변화산상에서 변화된 몸에 걸치신 옷도 흰옷이요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무덤에 있던 천사들도 흰옷을 입고 있었으며, 구 원 받은 성도들이 입는 옷도 흰옷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19장에서 지상 재림하시는 백말을 타고 흰세마포 옷을 입은 예수님의 모습과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입고 있었던 옷도 흰 세마포옷이 었습니다. 마태복음 17:2에,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 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태복음 28:2,3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 거늘’ 했으며,

계시록 6:11에, ‘11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또한 계시록 7:9의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 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했으며 계시록 19:8에,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 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기에는 흰옷이라는 표현이 없지만 빛나고 깨끗하려면 흰색깔의 옷이어 합니다. 그 런데 이들의 옷이 흰 세마포인 것이 계시록 19:14에서 지상재림하는 구원받은 성도 들이 흰 말을 타고 흰 세마포를 입은 주님과 함께 빛나고 깨끗한 흰 세마포를 입고 역시 백마를 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봅니다. 천상의 옷색깔은 흰색입니다.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이상의 성경구절들을 볼 때에 천국에서 입는 옷의 색깔은 흰색 옷입니다. 예수님도 흰옷을 입으시고, 천사들도, 성도들도 모두 흰 색깔의 옷입니다. 

에벨로부터 셈계의 일신신앙을 계승한 한국인의 조상 욕단 족속은 빛의 근원이신 하 나님을 지극히 공경했었습니다. 또한 하늘 백성인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침 해가 떠 오르는 ‘밝의 땅’(배달)인 극동 아시아까지 수 만리를 이동해 와서 흰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는 배달겨례 백 의 민족이 된 것입니다. 백 색깔의 옷을 선호하는 민족이라는 사실에서 한국민이 욕 단계 천손민족이라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둘째로 고대 한국인의 산정제사와 제천신앙

우리 한국인은 대홍수 후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배달나라를 세운 셈의 셋째 아들 알 밝산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으로서 민족사를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 으로 시작한 천손민족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증거들이 매우 많지만 무엇보다 오래 전부터 불 러 온 겨레의 노래 알이랑이 명백히 입증해 줍니다. 왜냐하면 알이랑은 ‘하나님과 함께’ 라는 의 미를 지니고 있는 종교적인 말이기 때문입니다. 알이랑은 우리 겨레가 셈족의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아주 분명한 물증인 것입니다. 그렇기 에 한 민족 고유의 종교는 다신 숭배가 아닌 ‘제천신앙’인 것입니다.

고대에 한국인은 제천의식을 거행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더욱이 한국인은 하나님을 표상하기 위해 어떠한 우상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단을 쌓고 천제(天祭)를 드렸을 뿐입니 다. 단군 조선 시대에는 북으로는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강화도 마리산 산정의 참성단에서 행하 여 졌습니다. 백두산은 단군과 조선족이 제천하던 곳이고, 우리 조상이 제일 먼저 정착하여 개척 한 곳은 지금의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송화강 연안 요동평야였습니다. 송화는 고대에 소밀, 속말, 소머리 즉 우수(牛首)였습니다. 이 이름은 흰 소를 잡아 제천하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소 머리라는 지명은 후일에 민족이동과 함께 강원도, 춘천, 경주, 그리고 일본 각지로 전파됩니다.

산정에서 거행했던 이 제천의식은 고조선 붕괴 후 열국시대와 삼국시대에 계승되어 한결같이 국 중 대회로 성대히 치러졌습니다. 곧 부여는 매 10월에 제천(祭天)하고 주야가무하였으니 이른바 영고(迎鼓)라는 국중 대회를 열었고, 예맥은 매 10월에 제천하고 주야 가무하였으니 무천(舞天) 이라는 국중 대회를 열었습니다. 마한은 매 10월에 농사를 마치면 국읍이 한 사람을 제주로 하여 제천신하니 이른바 천제라는 국중 대회를 열었고, 고구려는 매 3월과 10월에 제천하였는데 이 른바 동맹이라는 국중 대회를 열었습니다. 백제는 매 3월에 제천하였는데 이것을 교천이라는 국 중대회였으며, 신라는 매 10월에 제천하였는데 이것을 답지위절이라는 국중 대회였습니다. 하나 님께 제사하기 위해 나라 전체가 움직이고 흰옷 입은 백의의 백성들이 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워했습니다. 이 제천이야말로 동이문화의 정수(精髓)이며 우리 문화의 본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천의식은 동방에서는 최초에 백두산 산정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한국인의 시조 단군이 약 4300년 전 조선을 건국할 때에 먼저 백두산 산정에 올라 하나님께 정 성스레 천제를 드렸을 때입니다. 단군이 그렇게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 제사를 드렸던 까닦은 그 가 ‘알이랑 정신’곧 하나님 중심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 욕단이었기 때문 입니다. 백두산에서 천제를 드렸다는 사실은 백두산에서 발견된 고대 제단 무더기가 뒷받침해 줍니다. 1995년 6월 27일자 중앙일보는 ‘백두산에서 고대 제단 무더기 발견’이라는 제목 글 아래 백두산에서 고대 제단 무더기가 발견되었음을 아래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백두산 고대 제단 무더기는 중국 아마추어 고고학자 리수린이 발견하였다. 추정연대는 4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돌무더기 제단은 양 40마리를 드릴 수 있는 제단이다. 이 돌 제단의 용도에 대하여 윤내헌(단국대 박물관장)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제단 주위에서 수 백개의 적석총군과 마을 유적이 확인됐다고 하는데 이는 이 지역에 고조선의 지배층 그 중에서도 종교적 지도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 또 돌로 만든 제단과 적석총이 발견된다는 사실은 이 유적이 우리의 고대 문화유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준다. 중국의 황하 유역에서는 이런 류의 유적 발견 예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에서 발견된 둥근 형태의 제단은 요령성 서부의 홍산 문화 말기 유적과 비슷한 것으로 홍산 문화가 우리 민족의 고대 문화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 을 말해 주는 것이다.’했습니다.

백두산은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단의 발견은 고대 한국인이 집단적 으로 하나님께 천제를 드렸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동방 최초의 산정제사였던 백두산 천제 이후 ‘산정’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관습은 우리 겨레의 생활 속에서 계속되었는데, 강화도 마리산 (마니산의 원래 이름은 머리산이었습니다)을 비롯해 황해도 구월산, 강원도 태백산 등지의 산 정에는 우리 한국인의 선조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제천단이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실은 우리 겨레가 고산숭배 민족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갓 우연이 아닙니다. 이웃 민 족인 지나 만 하더라도 그들은 고산숭배 민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사를 그냥 들판에 서 지냅니다. 이것을 ‘교제(交祭)라고 합니다(최남선의 불함론)

그러면 한국인의 선조들에게 있었던 이러한 고산숭배 사상과 산정에서 천제를 드리는 관습은 어 디에서 유래한 것입니까? 그것은 대 홍수 후 노아가 아라랏 산정에서 하나님께 천제를 드린 것 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창8:20). 아라랏 산은 노아의 방주가 머문 곳으로서 홍수 이후의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바로 홍수가 끝나고 방주가 아라랏 산정에 서 머물면서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8식구와 방주에서 살아 남은 동물들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곧 단을 쌓고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아라랏 산정에서의 그 천제 를 열납하셨고 그 높은 산정에서 노아를 만나 주셨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고, 무지개 언약으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벌하지 아니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에벨로부터 노아의 일신 신앙를 계승한 셈계의 민족, 특히 셈족의 종가인 욕단 가계의 백성에게는 아라랏 산은 ‘천산’즉 하나님의 산(알산)이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성산이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날 이후에 그들에게는 하늘 높이 우뚝 솟은 높은 산은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곳, 즉 성산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고산숭배사상이 형성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 산 숭배사상이란 산을 신으로 숭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산에 계시는 하나님을 숭배하며 그분 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애굽에서 사백년 종살이 하던 히브리사람들을 해방시켜 시내산으로 인도하셔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도 했으며, 모세를 시내산으로 올라 오게 하셔서 율법과 십계명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에벨의 장자 벨렉계 후손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일년에 세번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와서 남자들은 하나님께 얼굴을 보이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오순절, 수장절에 온 국민이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을 뵙고 천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며 춤추고 즐거워하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벨렉의 아우인 욕단의 후예들인 우리 조상들이 백두산이나 강화도 마니산에서 천제 를 드리고 온 백성이 노래부르며 춤추었던 것과 서로 상통합니다.

홍수 후 한 분이신 하나님 만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을 갖고서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고개를 넘 어’(파미르 고원-천산산맥-알타이 산맥) 동방으로 이동한 욕단은 정착과 동시에 셈족의 관습대 로 평지가 아닌 높은 산인 백두산 산정에 올라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위해 천제를 거행하였습니 다. 백두산이 오늘날까지 우리 겨레의 의식 속에 성산(聖山)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백두산은 평범한 산이 아닙니다. 백두산은 천산이요 하나님의 산인 것입 니다. 실로 백두산이 우리 겨레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성지로 남아 있는 까닭은 단 하 나 그것 뿐입니다. 그 높은 산정에서 욕단계 선민 한국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배달나라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천산이 세 개 있습니다. 제 1천산인 백두산은 아라랏산(해발 5,137m)이요, 제 2천산인 백두산은 천산산맥의 최고봉인 텅거리 산(해발 6,995m)입니다. 몽골족도 유일신인 천신을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그 천신을 텡그리라 하였는데 그러므로 텅거리산은 천산, 하나님의 산이란 뜻입니다. 흉노나 투르크인이 부르는 텡그리(하나님)와 같은 존재입니다. 제 3의 백두 산은 함경도 백두산입니다. 한국인의 선조들은 이 모든 특별한 산에서 천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성경에도 산꼭대기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임재하시는 곳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 나님께 바치기 위해 올라간 산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모리아 산이었고, 그는 거기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 선지자 들과 대결하기 위해서 갈멜산을 지정하였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불로 응답을 받았으며, 그 후에 이세벨을 피해 시내산으로 가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곳도 시내산이었으며, 예수님도 변화산에서 변형되셨을 때에 하나님은 그 산정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욕단을 생각하면서 욕단과 동시대에 살았던 두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두 인물은 욥과 멜기세덱입니다. 욥과 멜기세덱은 모두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그 말은 욥이나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의 계열이 아니면서 하나님께서 최고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 람들입니다. 욥은 욥기서 1장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지극히 섬기 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하나님께서 칭찬한 사람입니다. 멜기세덱의 경우 창세기 14:18에 의하면 살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했습니다. 이 멜기세덱이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 라함을 축복 하기를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다면 다신 숭배가 충만했던 아브라함시대의 가나안 땅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 나님의 제사장이라 일컽는 멜기세덱이 누구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이 멜기세덱의 정체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두 사람을 천거합니다. 한 분은 성육신 하기 전의 그리 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성육신 전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주 나 타나셨듯이 이 때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분이 성육신 전 그리스도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두번 째 인물은 그 당시 까지도 살아 있었던 셈이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셈은 아브라함과 150년 동시 대에 살았습니다. 셈과 아브라함과는 그 당시 서로 교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전쟁에서 돌아 오는 지치고 배고픈 아브라함과 그 군사들에게 먹을 떡과 포도주를 공급하였고 그 당시 의 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만한 인물이 셈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 데 한 분 더 소개할 분이 있습니다.

셈의 4대 손인 에벨입니다. 에벨은 아브라함과 179년 동시 대에 살았고 아브라함 보다 4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에벨은 창세기 10:21에서 에벨을 소개 하기를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함으로 셈의 천손 계열이 에벨로 연결된다는 것을 암시 합니다. 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고 장자가 엘람, 차자가 앗수르이며 셋째가 아르박삭이었고 이 다섯 아들 중에 셋째인 아르박삿의 3대손이 에벨입니다. 셈의 하나님이 에벨의 하나님이 되 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에벨은 북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을 포함한 거대 왕국을 건설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에벨이 살렘왕 즉 평화의 왕이요 의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적격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성육신 전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기는 했지만 일시적으로 나타나셨다 가 떠나셨다가 또 필요하실 때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또한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긴 하지 만 이 명칭은 온 세상의 평화의 왕이요, 온 인류의 의의 왕이지 어떤 지역인 그 당시의  살렘이라 는 지방의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벨이 멜기세덱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7:2-3에서 멜기세덱을 두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 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했는데 그 당시에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180세 정도였는데 셈은 600년 동안 살고 있었고 그리고 에벨이 464년 동안 살고 있었 으므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다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 사람 같이 보 였을 것입니다.

결론으로 욕단계 선민 한국인은 백두산 산정에서 그리고 마니산 산정에서 셈족의 장자답게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위해 제천의식을 성대히 거행했습니다. 여기에 비해 메소포타미아에 거주하 던 욕단의 형제인 벨렉의 가계가 급속히 우상 숭배자들로 타락했던 것과 견주어 볼 때에 그 신실 함이 놀라운 것입니다. 벨렉의 5대손인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는 이미 유브라데강 하구에 있을 때에 에벨이 전해준 셈계의 일신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의 도시 갈데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가는 곳 마다 하나님께 제사드렸다고 했습니다. 이 때는 레위기에서 보여준 제사법이 나오기 훨씬 전입니다. 

아시아 동쪽에 거주하는 동부 히브리인인 한국인들이 아시아 서쪽에 거주하는 서부 히브리인인 유대인들보다도 더욱 뛰어나게 우리 주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우리 겨레는 알이랑 민족이요 이 나라는 무궁화의 나라 즉 샤론의 장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