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오스

그가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

퀴리오스

내영혼의 양식

욕단은 누구인가? 창세기 10:30

서진35 2019. 3. 30. 07:56



예수원의 설립자 대천덕 신부님은 ‘우리와 하나님’이란 책에서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 었습니다. ‘벨렉’이란 이름의 의미는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 알모닷, 셀렙 등 13아들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지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 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추측은 옳았습니다. 우리 민족사를 시작한 단군은 바로 성경상의 욕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그 타당한 근거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의 족속은 신적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생래적으로 타고난 특별한 천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섬 기는 하나님이 밝고 환한 천국에서 빛 가운데 계시는 빛의 근원이신 분이기 때문이셨습니다. 그 리하여 욕단 족속은 빛이 시작되는 땅인 ‘새 밝나라’ 곧 ‘새발’을 찾아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밝고 환한 땅을 찾아가 온 백성이 밝고 환한 흰옷을 입고서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제사하며 삶을 영위하는 신시(神市),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소망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오직 천손민족 만 품을 수 있는 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욕단은 광명의 본원지인 ‘밝의 땅’을 찾아서 아침에 뜨는 해를 따라 ‘알이랑 고개’를 넘어 쉬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동해에 해 떠오르는 땅, 동방의 밝은 땅 끝 에 당도하여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한) 높고 밝은 산인 한 밝산(태백산-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하여 밝달 나라(배달나라)를 세워 우리 밝달겨레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 들은 욕단을 ‘밝달임금’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욕단은 사람들을 밝의 땅, 동방의 땅 끝 으로 이끌고 온 밝달족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욕단을 단군이라고 단정짓게 하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단군’이라는 칭호는 밝달 임금의 한자 표기식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단군이라는 칭호는 그 이름 자체에 이 인물의 성격이 어느 정도 집약적으로 반영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 서 단군의 정체를 밝히는데 ‘단군’이라는 칭호가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그러므로 단군 칭호의 의미와 유래가 무엇인지를 해명해야 하겠습니다. 단군칭호의 의미와 유래라고 할 때에는 한자로 표현된 ‘단군’의 본래 우리말이 어떤 것이며, 그 우리말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어원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주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단군(檀君)’의 ‘군’은 ‘임금’을 표현하는 우리말의 한자의역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여기서 ‘단 임금’이 됩니다. 그리고 ‘단(檀’)자의 의미는 삼국유사에서 인용된 ‘고기’에서 ‘제단 단’ ‘壇’자로 쓴 외에 그 밖의 단군설화에서는 모두 박달나무 단(檀)자를 썼습니다. 삼국유사 정 덕본 이전의 조선왕조 초기의 다른 여러 책들에서는 단군에 대해서 전하면서 박달나무 단자를 썼습니다.  박달나무 단자는 그 자체만으로 ‘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화 에서는 ‘단’자 밑에 또 나무 수(樹)자를 덧붙여 ‘나무’라는 말을 겹말로 중복시킨 것이 나옵니다. 바로 신단수 (神壇樹)입니다. 이것은 원래 설화에 있었던 박달나무란 말의 ‘’박달 만을 ‘단’’자로 나무’ 를 ‘수’ 자로 의역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단군’의 ‘단’자가 우리말의 ‘박달’을 의 미하는 것이라면 단군은 ‘박달임금’이라는 말입니다.  ‘박달’의 ‘달’은 ‘아사달’ 할 때의 그 ‘달’인 데  땅이라는 말입니다. ‘박달’의 ‘박’은 밝과 통합니다. 오늘날에도 일상회화에서 ‘밝’의 바침 ‘ㄹ’이 생략되어 ‘밝다’가 ‘박다’로 발음됩니다.

이것은 우리 말에서 겹자음 받침을 가진 경우 앞의 겹자음 하나가 발음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음 운법칙으로 되는 것과 관련됩니다. 예를 들면 젊다는 점다, 밝다는 박다, 읊다는 읖다.  밟다는 밥다입니다. 이로서 박달의 박이 밝다의 밝과 통하며, 그에 따라 ‘박달’을 ‘밝달’로 볼 수 있습니 다. 그러므로 단군은 밝달임금이라는 말입니다. 밝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즉 단군은 밝은 땅 의 임금 곧 배달임금이란 글자입니다. 밝달족 임금의 이두식 표현이 단군이라는 칭호인 것입 니다. 단군은 ‘밝달임금’ 또는’ 배달임금’ 등으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우리 동방(조선) 고유의 호 칭 이었습니다. 이 토박이 말을 후세에 한자로 의역하여 박달 단, 임금 군이라고 표기하여 놓았 기 때문에 비로소 ‘단군’이라는 칭호와 발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따라서 단군이라는 뜻을 가진 보통 명사입니다. 따라서 ‘단군’은 한 사람이 아니고 그 자리를 이어 받은 후손들 모두가 단군 이라고 불리어 왔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 한 사람이 천년 간 고조선을 통치한 것으로 잘 못 기록했기에 후세의 우리 들이 한 사람의 이름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계림유사(鷄林類事)란 책에선 말하기를 ‘밝달(檀) 은 배달(倍達)이요, 국(國)은 나라(那羅)요 군(君)은 임금이다.’하였습니다. 와유록(臥遊錄)이란 책에서 말하기를 ‘한밝산’은 세속에서 박달이라 일컫는데, 세상에서 밝달임금이 내려오신 땅이 라 이른다.’했습니다. 신단실기(神檀實記)란 책에서는 ‘밝달임금’ 때에는 사람들이 ‘밝달’을 ‘배 달’ 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음이 구을러 ‘박달’이 되었다’했습니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배 달’은 나라 이름이기 때문에 그 자손들은 모두 배달임금(단군)이라 한다.’하였고, 동국여지승람 에선 ‘단군이란 일컬음은 곧 배달나라 임금의 칭호인 까닭에 그 나라를 잇는 임금들을 모두 ‘단 군’ 이라 일컫는다.’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때까지의 고찰로써 성경상의 한국인의 조상 ‘욕단’이 다름 아닌 민족시조 ‘단 군’이라고 충분히 단정할 수 있습니다. 욕단이 홍수 후 알이랑 고개를 넘어 사람들을 이 동방의 땅 끝 ‘밝의 땅’으로 인도해 온 우리 밝달겨레의 조상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부르기를 분명히 ‘밝 달의 임금’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단군의 정체를 정확히 해명하는 작업은 학계에선 난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안다면 그것은 절대로 어려운 과제가 아닙니다. 우리 아이랑 민족 배달 겨레의 조상 단군은 성경상의 욕단입니다. 사실은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같다는 것에서 더욱 더 설득력을 얻습니다.

둘째로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

조선의 건국은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최초로 등장합니다.《삼국유사》에는 ‘단군이 요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연은 요임금은 무진년에 즉위하였으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이 되므로 정확한 시기 가 의심스럽다는 주석을 함께 실었습니다. 《동국통감》〈외기〉에는 “동방은 애초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박달나무 아래로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임금으로 모셔 ‘단군’이라 하 고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으니 요 임금 무진년이다. 처음엔 평양에 도읍하였고 나중엔 백악으로 옮겼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왕운기》 역시 건국 연도를 무진년으로 기록하고 있고, 국사편찬 위원회는 삼국유사를 근거로 단군 조선의 설립을 기원전 2333년으로 보고 있고 현행 대한 민국의 국사 교과서들 역시 이를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을 단군 조선의 건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 2007년 교육부는 최근의 청동기 유물 발굴 결과 《삼국유사》의 건국 기록이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고 보고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라는 기술을 ' ~ 건국 하였다'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습니 다. 왜냐하면 실제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는 그보다 더 앞선 연대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의 역사학계에서는 단군에 의한 조선 건국 연대를 기원전 3000년까지 소급해서 보고 있 습니다. 일부에서는 단군의 즉위 원년의 절대 연대는 사실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삼국유사 등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군이 요와 동시에 즉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와 순은 이상적인 나라를 건국했다는 인물의 대명사격입니다. 

특히 요는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는 인물입니다. 바로 그런 요임금과 단군이 동시대에 즉위해 조선을 건국했다는, 즉 우리 나라가 지나(중국)와 대등한 시기에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 라라는 것을 알리려는데 그 의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단군의 즉위 연대는 그 절대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내세우고자 했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 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이 성경상의 욕단 의 연대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 까지 모든 연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역추적하여 계산해 보면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난 때의 주전 원년은 4114년입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 후 노아가 죽은 때는 BC 2458년입니다. 셈의 증손자 에벨은 BC 2391년에 태어나 BC 2357년에 욕단의 형제인 벨렉을 낳고 BC 1927 년까지 살았습니다. 벨렉은 239세를 향수했습니다. 그 때는 BC 2118년입니다.  BC 2118 년 과 BC 2333년과는 215년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성경 연대는 성경 연구가에 따라 계산이 조금 씩 차이가 있습니다. 4천년의 역사에서 215년은 비교적 근사한 차이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정 확 무오한 연대 산출이 아니라 욕단의 연대가 바로 단군시대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백두산 산정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조선을 건국한 단군이 성경상의 욕단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욕단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조선이라는 국명에서 드러납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원래 ‘주신’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의 지나(중국)식 표현입니다. 한국인의 조상인 욕단은 그가 도달한 시베리아와 만주 대륙에 이르 는 더 넑은 동방의 새 땅을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신’이라고 했는데 후일에 주신이라는 말의 옛 음이 지나의 옛 글에 식신(息愼), 숙신(肅愼), 직신(稷愼), 주신(州愼),  조신(鳥愼), 조선(朝鮮)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된 것입니다. 

한 민족 최초의 나라이름인 ‘조선’의 본뜻은 ‘주신’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신 ‘조선’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아침 조, ‘빛날 선’해서 이른 단어 때문에 ‘아침 해가 빛난다’라는 뜻에서 조선이라는 국호가 생겼다 하나 조선이라는 국호는 한자가 생기기 전에 이미 있던 국호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말은 우리의 고대어로 무엇을 뜻하였겠습니까? 

일찍이 단체 신채호는 조선의 어원은 숙신((肅愼)이라고 하고,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서는 숙신의 옛 이름을 ‘주신(珠申)’이라 하고, 주신은 소속관경을 가리키는 만주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말로 일정한 지역의 땅, 영토를 의미합니다. 바로 여기에 조선의 원의가 있습니다. 즉 ‘주신’이 이 ‘숙신’의 어원이요, 조선의 어원이긴 한데 우리가 사는 땅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라고 ‘주신(賜)’ 땅이라는 ‘주신’인 것입니다. 그리고 욕단은 조선을 건국한 역사적인 그 날을 ‘하늘 문이 열렸다’는 뜻의 ‘개천(開天)’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욕단이 조선을 건국하기 전 먼 저 백두 산 산정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경건히 천제를 드렸을 때 아라랏 산정의 노아의 제사 에서 하늘 문을 여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욕단의 제사를 열납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나라를 세운 건국일을 개천(開天) 즉 ‘하늘이 열렸다’고 했을 것입니다.

셋째로 한국인의 조상 단군

창세기 10;2에 백인종의 조상인 야벳의 아들들 가운데 두발과 메섹이라는 인명이 나옵니다. 서 구 성경학자들이 쓴 주석책들을 보면 오늘날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라는 지명은 메섹에서 유 래했다고 설명합니다. 메섹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가서 정착했기에 그의 이름이 지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랄산맥 동쪽에는 토블스크라는 지방이 있는데 그것 또한 야벳의 아들 두발 에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두발이라는 사람이 그곳에 가서 살았기에 그의 이 름을 따서 지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주석가들이 무슨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의 모스크바나 토블스크로 가서 메섹과 두발을 만나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떤 고고학적 유물이나 문헌 상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메섹은 모스크바, 두발은 코블스크와 발 음이 유사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악착같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 니다. 대부분 그대로 수용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인물인 욕단이 ‘알이랄’고개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밝달나라를 세운 밝달족의 우두머리 였는데 그가 단군이었다고 단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욱 욕단의 목적지 스발은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요 또한 서울과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이라는 명사의 유래와 그 의미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서울이 한국의 수도라는 사실 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서울’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어떤 말인지 그 뜻을 무엇인지를 아는 사 람은 많지 않습니다.

‘서울’이라는 말은 바로 ‘새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새발’의 ‘새’는 ‘싀, 스, 시’등으로  쓰였고, 오늘날엔 ‘새, 스, 시’등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발’은 ‘발-울’로 변했습니다. ㅂ-ㅂ.ㅇ-ㅇ’의 음운 전변에 의해서 ‘불-ㅂㅇ.ㄹ-울’로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블’은 현대어 ‘서울’에 까지 이르렀 습니다. 즉 ‘서울’이라는 말의 시작은 ‘시블’이었습니다. ‘시, 싀, 스, 시’는 새롭다이며, ‘블 불’은 ‘밝’에서 출발된 말이니 ‘서울’이라는 말 역시 ‘새로운 땅’,좀더 자세히 말하면, ‘밝고 새로운 나라 (땅)’이라는 뜻입니다. 즉 ‘서울’은 ‘새밝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시적 지명인 ‘새팔(시블) 은 또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기도 합니다. 시블-시불-셔울-서울로 바뀐 것이 한국의 수도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서울’이라는 말의 어원이 ‘시블’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수도는 국가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이라는 명사는 보통명사이기 때 문에 수도를 다른 지방으로 옮겨도 ‘시발’은 여전히 ‘서울’로 간주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동방으로 간 욕단계 선민이 누구인지 오늘날 우리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성경에 분명히 단서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선민인 욕단의 후손은 어느 땅에 있는 누구입니까? 그 존귀 한 백성은 바로 극동의 한국인입니다. 욕단의 목적지 ‘세팔’은 한 민족의 역사의 고향 ‘시블= 새 벌 =새 밝은 곳=배달이며, 또한 대한민국의 상징인 ‘서울’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알이랑 민족 한국인이 욕단계 선민이라는 사실은 그 증거가 아주 명확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욕단이 단군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역사적 인물 욕단이 알이랑(하나님과 함께) 고개 (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밝달나라를 세운 밝달족의 우두머리 였는데 그가 단군인 것입니다. 단군이란 밝달임금의 한자식 표현입니다. 욕단의 목적지 ‘스발’은 광명의 본원지인 새밝나라요 또한 ‘서울’과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욕단의 시대와 단군의 시대가 같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단군이 선포했던 ‘8조금법’이라는 배달나라 국법이 있었는데 ‘규원사화’에 의하면 제 1조가 ‘너희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정성을 다해 순수하게 섬기라’이며,  제 2조는 ‘너 희는 부모를 공경하라. 너희 어버이는 하늘에서부터 온 것이니, 너희의 어버이를 공경하면 이는 능히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니라.’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받 은 십계명의 제 1계명과 5계명과 같은 것입니다.  단군이 ‘알이랑 정신’ 곧 ‘하나님 중심 사상’ 과 ‘신본주의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 ‘8조 검법’을 대했을 때에 세상 사람들이나 세속 사학자들은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중심으로 생각 하게 됩니다. 우리 배달겨레의 조상 단군은 대홍수 후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 앙을 갖고서 알이랑 고개를 넘어 동방으로 천동한 하나님의 사람 ‘욕단’이었다고 더더욱 단정하 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은 우리 민족사를 시작한 한국인의 조상 단군이십니다. 한국인의 기원은 셈의 가계, 그 중에서도 약 4300(BC 2333+AD 2000) 전에 동  양으로 이주하여 우리 배달 동이겨레의 선조가 된 욕단의 후손, 곧 단군의 자손입니다. 동방의 한국인은 하나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또 하나의 하나님의 선민인 것입니다. 에벨의 혈통인 욕단 의 후손은 선택 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설화에 나오는 천손 강림의 모티브가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계보가 셈-아르박삿-셀라-에벨-벨렉과 욕단으로 이어지는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이 설화에 반영된 것입니다. 단군은 신화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동방 ‘밝의 땅’에 당도하자 맨 먼저 백두산 산정에 올라 창조주 하나님께 천제를 드리고 조 선을 건국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성경상의 한국인의 기원은 노아의 작은 아들 셈의 현손 욕단, 즉 단군입니다. 

결론
대천덕신부님의 글로 시작했기에 그분이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이란  책의 한 내용을 가지고 말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엔 한국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 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에 게 공동의 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 니 만큼 한국인으로서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 이다’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한국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라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은 자신이 누구인 지를 모릅니다. 실제로 한국인은 자신의 참 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레이 신부의 말과 같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속히 회복해야 할 백성이 바로 우리 한민족입니다.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기록된 계시인 성경에 의하면 한국인은 천손민족, 즉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 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인의 참 모습이며 우리 겨레가 회복해야 할 본연의 모습입니다. 한국인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당신의 특별하신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고자 일찍 이 택하시고 감추어 놓으신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유대민족은 복 음의 첫 주자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한 민족은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예 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재림을 재촉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첫째는 선교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14에서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 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하신 말씀이요 둘째는 유대인의 구원에 대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 복음 23:39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 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지 못하고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데 그들이 예수님 을 메시야로 믿고 영접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고 환영할 때까지 오시지 않겠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로마서 11:25에서 이스라엘이 완악한 대로 내버려 두신 것은 이 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1:14에서 이스라엘로 시기케 해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서양기독교는 유대인들을 핍박, 박해 살륙 했기에 유대인들의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서양 기 독교인들이 전하는 복음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시기의 대상이 될 민족은 그들의 조상 벨렉의 형제인 욕단의 후손인 한국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마지막 주자의 임무인 것 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한국민을 시기하게 됩니까? 자신들만 천손민족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한국인도 천손민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이 배척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그들에게 나 타난 동방의 천손민족 한국인이 전하는 복음을 그들이 시기심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마지막 주자임을 깨닫고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 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국민은 욕 단의 후예로서 욕단이 가진 하나님 중심 사상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잃 어버린 고대역사를 복원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