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오스

그가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

퀴리오스

내영혼의 양식

성경에 사라진 단지파

서진35 2019. 3. 29. 04:36




KBS역사 스페셜 방영


오랜 방랑 끝에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고자할 때에 
오늘날의 만주지역을 달라고 유엔에 청원하였던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민족은 원래 환족이라고 했는데  
아주 옛날에는 9 환족 12국가를 형성하였으나 그 강역이 너무 넓고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말과 풍습이 달라져서 안타까워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라했으니 가능한 위치는  
동서:바이칼-알라스카의 8,000키로, 남북:알라스카 -남미 끝 20,000키로 
밖에는 없고 또 그 인종적 특징 또한 몽골리안(환/몽고반점)입니다 
대륙은 말로 이동, 미주는 해안선을 따라 남하했다고 봅니다 
12환국중에 우르라는 국가가 있는데 이스라엘의조상 아브라함이 떠났던 
지역명과 일치합니다 
요즈음 서양학자들이 내놓는 연구결과에 의하면 
서양 최초의 문명을 수메르문명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 수메르문명 조차 
동쪽 어디에선가 온 것 같다고 하고 있고 점토판을 해독해 나가는과정에서 
수메르인은 황인종이고 머리와 눈동자가 까맣다는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우리민족의 특징중 하나가 피라미드인데 
이집트조차 우리민족의 흔적이 있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본적이 있고 
그외 중국 북부지방들 만주 고구려 강역과 남미의 인디오문명까지 
모두 인종적으로는 셈 계통 황인종, 엉덩이의 반점 , 피라미드문명 등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외 풍습, 유물 등 모든 것이 같고 
예를들면 손 맷돌이 이스라엘과 우리가 같습니다,

쑥, 마늘, 무궁화 ( 샤론의 장미라고 합니다 ) , 흰옷, ...등등 너무 많고 
더 더우기 놀라운것은  
얼마전 티브이에서 북한의 고인돌 발굴을 보여주었는데 
5,000년이 넘었다는 고인돌무덤의 부장품중에 
우리민족의 특징인 비파형동검, 동경, 등등과 더불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촛대-7자루의 초를 얹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Image result for 우리민족의 특징인 비파형동검, 동경,

 더 이상 열거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므로 줄입니다만  
앞으로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함을 통하여 인류문화발달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시길 바랍니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역사이고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입니다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닐까요 ??? 
그조상은 한민족 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3천년  


수년전, 미국 시카고에서 성서언어학(수메르어)을 연구하는 강신택 박사가 ‘단군이 수메르인’이라고 주장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켜 B.C. 3천-2천년까지 융성했었던 수메르족이 아케디언족에 의해 멸망당하자 농사법과 무기 등 선진문명을 갖고 약 B.C. 1천년 경, 한반도에 들어와 세운 나라가 바로 ‘조선1)’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단군이 수메르인일 뿐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도 5천년이 아닌 3천년인 셈이다. 


그는 메소포타미아라는 세계 최초의 문명을 이뤘던 수메르족의 말을 20년간 연구하면서 이같은 가설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수메르어의 어순은 주어, 목적어, 동사 순으로 우리말과 문장 형식이 똑같고 조사로 쓰이는 ‘-로’는 ra(라)로, ‘-에서’는 es(에스)로 각각 비슷하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히브리어에 절대적 영향을 준 것이 바로 수메르어라는 사실이다. 언어는 곧 지배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히브리 민족의 근원이 수메르족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도 메소포타미아 남부(갈대아)에 위치한 ‘우르’가 아닌가. 그도 수메르인인 것이다.  

수메르국과 우르국에서 단군에게 특산물을 바치다  
고려때 행촌 이암 선생이 전한 <단군세기>에는 위의 사실에 대해 부연설명하고 있다. <단군세기>는 1세 단군 왕검으로부터 47세 단군고열가까지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로 기록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지칭하는 단군은 1세 단군이다. 제 15세 단제때의 기록을 보자.  

‘신시2년(기원전 1660년) 대홍수가 나서 민가가 크게 해를 입었다. 겨울 10월에는 양운국과 수밀이국의 사신이 와서 특산물을 바쳤다. 가을 7월에는 우루국 사람 20여명이 투항해 오니,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도록 명하였다.’  

단군세기를 비롯 북부여기, 태백일사, 삼성기, 단기고사 등의 ‘한단고기(桓檀古記)’들은 사학계에서는 소위 이단시 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고대사에 있어서 정통으로 취급되고 있는 사서들의 ‘곰이 사람을 낳았다’는 식보다는 훨씬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위 재위년도 등을 따져봤을 때 부분적으로 시기가 맞지않거나 연도계산이 틀린 것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등장하는 사건들이 있다. 이를테면 위의 것이다.  

위에서 언급된 양운국, 수밀이국, 우루국은 모두 한인(桓人)시대의 한국(桓國) 12연방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수밀이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수메르족의 나라로 추측된다. 그리고 우루국 역시 서남아시아의 ‘우르국’ 또는 성경에 나오는 ‘갈대아 우르국’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사는 오히려 상고시대에 지구촌을 이룬 셈 아닌가? 광활한 영역을 통치한 칭기즈칸은 이미 인터넷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는데….Image result for 환국 지도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단군의 지배영역이다. 아마도 전후상황으로 보건데 통치영역이 지나칠 정도로 넓었거나 아니면 한반도에 정착하기 이전으로 보인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단군의 첫 도읍지인 아사달(阿斯達)이 어디인지조차 모르지 않는가. 어쩌면 흑해나 지중해 연안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루국 사람이 투항해오자 염수 근처의 땅에 정착하도록 명했다고 했는데 어쩌면 이 염수(소금물처럼 짠 호수)가 바로 사해(死海)는 아닌지…. 

수메르어에서 중국어까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라고 하면 우리나라 전역을 일컫는 것처럼 이스라엘에서는 그 전역을 ‘단에서 브엘세바’라고 한다. 레바논 동북지방에 위치한 단(Dan)은 단(Dan)지파가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기 위해 200년간을 싸우는 동안 점령하고 있던 땅으로 원래는 ‘라이쉬’였다고 한다(삿18:29). 그후 또다시 레센도 점령하여 ‘단’이란 지명으로 고쳐 불렀는데(수19:47), 이처럼 단지파는 이동하여 정착하는 곳마다 단이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러나 단지파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동시에 기원전 10세기경 성서에서도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최근 학자들은 그후 단지파의 경로에 대해 시리아 - 이라크 - 이란 - 중국 북부 우랄 알타이 산맥 - 한반도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우랄 알타이 산맥에서는 100년간 정착함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자란 2세들은 아예 히브리말을 잊어버리고 알타이 말만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양사에서 우리 민족을 우랄 알타이어족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이다.  

일본어에 지천으로 널린 뜻모르는 단어의 어원이 우리나라의 고어가 많듯이 마찬가지로 우리가 뜻모르고 쓰는 대부분의 언어도 몽고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이 많다. 가령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으례 ‘야호’라고 외치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도 쓰이고 있는 몽고어다. 컴퓨터와 전화가 없던 시절, 장거리를 단번에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 산 꼭대기에서 저 산 꼭대기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야호∼’, 가도 되느냐라고.  

비록 민족의 대이동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을지언정 언어의 생명력은 아직도 남아 단지파의 이동경로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수메르어에 뿌리를 두고 다음으로 히브리어, 몽고어, 중국어가 남아 있는 것이다. 나중에 영향을 받은 것일수록 많이 남아 있는 법, 그렇다면 과연 히브리어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고대 히브리 문자가 씌어진 와당(瓦當)과 단군지석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광주 박물관에는 아주 희귀한 고조선시대 와당(瓦當)이 소장되어 있다.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것인데 놀랍게도 고대(古代 )히브리 문자가 씌어 있다. 그 내용은 다분히 종교적인 것으로 ‘잠언을 가르치는 사사가 통치한다.’ ‘오엽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라.’ ‘도착했다.’, ‘성도가 모여서 기도함으로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다’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대략 B.C. 1천년경에 사용했던 것으로 그 당시의 것에서 약간 진보된 것도 있다. 이 문자는 야곱의 12지파만이 사용한 것인데 그 문자의 사용시기가 성경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단지파의 소멸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대동강뿐 아니라 백두산에도 히브리어가 씌어 있다. 일제치하 고정록 선생에 의해 발견된 ‘단군지석’이 바로 그것이다. 1911년경 일본인들이 백두산에서 벌목하다가 뜻을 알 수 없는 글이 씌어 있는 지석(誌石)을 발견, 의주에 있는 평북 도청에 옮겨 놓았는데, 그 지석에 음각된 글이 한글도 아니고 한자도 아니어서 아무도 해독하는 사람이 없어 모두들 궁금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당시 의주 천주교당에 와 있었던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가 그 지석의 글을 판독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이 글자는 ‘히브리’ 문자이며 내용은 ‘단군지석’인데 판독해보니 제작연대는 약 3천년 전이라고.


 
Image result for 와당지석과 히브리어

그런데 비단 이런 유물들 뿐 아니라 아직도 우리말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히브리어가 있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애비, 애미, 애기 등이다. 이것은 히브리어와 발음뿐 아니라 의미까지 같다. 그리고 장례를 치를 때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한다든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남아있는 ‘고수레’ 등의 용어가 그러하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우리 민족의 뿌리인 ‘단군’의 ‘단(dan :‘심판자’라는 의미)’부터가 사실은 히브리어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된 이름을 가진 자가 히브리어를 썼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다 

<도착 했다>

< 5엽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자.>


 
Image result for 와당지석과 히브리어

위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조선 시대 와당이며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것으로 고대 히브리 문자

적혀 있다. 


Related image

우리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 고대 우리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의 공통된 풍습 

>너무도 흡사한 유대인과 한국인의 풍습  
작년 4월, KBS 일요스페셜 팀이 제작한 <황금나라의 비밀, 신라 황남대총>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또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1973년 7월 6일,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시내 한가운데 있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원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다큐멘터리는 신라의 금관부터가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것으로, 그 기원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유라시아 샤먼들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평원에서 발견된 무덤이 신라초기 돌연 출연한 무덤양식인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 동일하며, 출토된 유물의 대다수가 당시 지중해와 흑해연안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함을 실물과 비교,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앞 바다에 있는 사이프러스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그것은 완전히 똑같은데,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쓰던 물건들이 똑같다는 것은 생활양식도 그러하다는 것. 먼저 가장 보수적인 전통중에 하나인 무덤 양식이 똑같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積石, 즉 그들도 우리도 돌담을 쌓은 것이다.  

이스라엘 북부나 중부 일부에 사는 일부 종족들은 아직도 돌담으로 지은 집에 살며,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로 돌제단을 쌓는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단(壇)을 쌓았으며(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 제단 앞에서는 잔을 세 번 돌린 후 제상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사방식뿐 아니라 특히 유대인들의 장례방식은 우리와 너무도 흡사하다. 가령 상주들이 베옷을 입고 베로 건을 만들어 쓴 뒤 향을 피우며 대나무를 짚고 곡을 한다든가(창37:34)(역상21:16), 곡을 할 때는 ‘아이고 아이고’라고 한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도 이런 식으로 장례를 지내지는 않는다. 인류사를 통틀어 사람이 죽었을 때, 베옷 입고 곡을 하는 민족은 오직 한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뿐인 것이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은 우리와 같은 농경법과 농구(보습, 쟁기, 도리깨 등)로 농사지었으며 일상생활에서도 부삽, 불집게, 숟가락, 놋그릇을 사용(열하25:14)하여 매운음식과 부추 그리고 아주 깊고 맑은 물에만 사는 향어(일명 이스라엘 잉어) 등을 즐겨 먹었다.  

이렇듯 한국과 이스라엘은 수천년동안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양식을 공유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유물이 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동짓날의 팥죽과 유월절의 희생양  
동짓날만 되면 우리 조상들은 팥죽을 만들어 각 방의 문설주를 비롯, 장독과 헛간 등에 뿌리곤 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일종의 신앙적인 행사가 성경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출애굽기(12:6, 23)에는 모세의 말을 듣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의 장자는 모두 살고 그렇지 않은 애굽사람들의 장자는 모두 죽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선 양의 피를 바르면 ‘死者’귀신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후로 한반도까지 건너온 이스라엘 단지파의 자손들에게도 이 관습이 그대로 남아 동짓날 팥죽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양이 많던 애굽에 비해 한반도에서는 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의 피와 비슷한 색인 ‘팥’이었다는 것. 그러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는 것은 단순한 절기음식이 아닌 ‘유월절 행사’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사 지낼 때 고사떡을 반드시 팥으로 하는 것도 팥이 양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3500년이란 전통을 가진 이스라엘의 명절이다. 즉 양의 피를 바른 문설주를 건너가도(pass over)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날인 것이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7월 14일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 일주일간 지킨다. 특히 첫날 밤엔 모든 사람들이 ‘흰 옷’을 입고 출애굽의 역사를 재현하는 거대한 민족적 축제로 밤을 세운다.  

무엇보다 유월절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희생양’을 바치던 제사의식.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 유월절 희생제사의식을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지키는 사람들이 있으니 다름아닌 그리심 산의 사마리아 유대인 즉 사마리탄 종족2)이다. 이들은 현재 이스라엘의 ‘나불루스’라는 곳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곳은 주로 아랍인들이 사는 사마리아 지방의 한 부락이다.  


유대인과 한국인이 흰 옷을 즐겨 입는 이유  

유월절이 되면 사마리탄 남자들은 모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그리심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 많은 수의 양을 잡아 제사를 올린다. 그리고 그 양의 피를 모든 사마리탄 종족의 얼굴과 흰 두루마기에 묻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도를 드린다. 먼저 성경을 읽은 다음 번제를 드리는데 이 의식이 그들을 성화시키며 이를 통해 속죄함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그들의 흰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은 마치 조선시대의 선비를 연상시키는데, 사마리탄 종족 뿐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이 이 유월절만은 반드시 ‘흰 옷’을 입는다. 흔히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즐겨 입는다 하여 ‘백의 민족’이라 일컫는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본래 흰 옷은 노동복이 아니라 예복이었다. 구약성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이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갈 때 입었던 예복도 바로 세마포 모시옷(레16:4)이었으니, 예법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 또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처럼 흰 두루마기를 입고 예절을 갖추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