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리오스

그가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

퀴리오스

좋아하는 음악들

[스크랩] `Lasci?a Ch`Io Pianga(울게하소서)`

서진35 2011. 12. 16. 18:04

 

      'Lascia Ch`Io Pianga(울게하소서)'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a
      난 한숨을 짓네 난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Il duolo infranga queste ritorte de miei martiri sol per pieta
      고통의 끈을 끊어 주소서 내 이 큰 고통 다 끊어 주소서
      de miei martiri sol per pieta
      자비를 내려 다 끊어주소서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E che sospiri la liberta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

아일랜드 출신 여성 그룹 ‘켈틱 우먼(Celtic Woman)’

켈틱 우먼은 클로에(Chloe), 메이브(Meav), 리사(Lisa),
올라(Orla) 등 네 명의 보컬리스트와 피들(바이올린의 일종)

연주자인 메어리드 네스빗(Mairead Nesbitt) 등
5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이다.

현재는 임신한 메이브 대신 데어더 새논(Deirdre Shannon)이
게스트 보컬리스트로 영입돼 활동중이지만,
이번에 발매된 ‘켈틱 우먼’은

원 멤버인 메이브가 참여한 음반이다.

지난 2004년 아일랜드에서 결성된 켈틱 우먼은
이듬해 이 앨범을 들고 미국으로 진출, 빌보드
월드뮤직 차트에 52주 연속으로 1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북유럽 켈트 지방의 자연친화적인 정서를
신비롭고 서정적인 멜로드로 재현해낸
켈틱 우먼만의 노래 색깔이
미국인들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백설공주’ ‘아더왕 이야기’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에 영향을 미친 켈트 문화,
특히 음악은 빠른 템포의 현악기 연주와
반복되는 멜로디 속에서 은근한 애절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19세기에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한 켈트 음악은
미국 컨트리 음악이 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는 켈틱 우먼이 노래한
‘I Dreamt I Dwelt in Marble Halls’가
한 냉장고 CF 배경음악으로 쓰여 이름이 알려졌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삽입곡인 ‘May It Be’,
애니메이션 ‘노트르담의 꼽추’ 삽입곡 ‘Someday’
등 귀에 익은 팝들이 어여쁜 그녀들을 통해
들려지고 있다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E che sospiri la libert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
난 한숨을 짓네 난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E che sospiri la libert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Il duolo infranga queste ritorte de miei martiri sol per piet
고통의 끈을 끊어 주소서 내 이 큰 고통 다 끊어 주소서

de miei martiri sol per piet
자비를 내려 다 끊어주소서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E che sospiri la libert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E che sospiri, e che sospiri la libert
난 한숨을 짓네 난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E che sospiri la libert
한숨을 짓네 난 자유를 위해

Haendel - 'Rinaldo(리날도)' 중 2막 4장 'Lascia Ch`Io Pianga(울게하소서)' / Celtic Woman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는 1711년 2월 24일에 런던의 대표적인 극장 퀸즈(현재의 킹즈)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는데,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 못지 않게
카스트라토 '니콜로 그리말디'의 가창과 헨델의 쳄발로 연주가 단단히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울게하소서'는 대표적인 바로크 오페라 중의 하나인 '리날도(Rinaldo)'의 제2막에서 '알미레나'가 부르는 아리아이다.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십자군의 영웅인 리날도를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운 사라센왕 '아르간테'와 그의 연인 '아르미다'는
마술책으로 리날도의 약혼녀 '알미레나'를 정원에서 납치하게 된다.
이후 '아르미다'의 마술궁전에서 '아르간테'는 '알미레나'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데
이때 '알미레나'가 외면하면서 애절하게 부르는 노래가 바로 '울게하소서'이다.

이곡은 영화 <파리넬리>의 O.S.T로 유명하게 되었다.
카스트라토였던 칼로 브로스키에 대한 영화인데 이 사람의 예명이 파리넬리이다.

"울게 하소서"와 "사랑하는 나의 임"은 바로크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사랑 받는 아리아이다. 특히, 이 두 아리아는 영화 "파리넬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지만, 그것이 모두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아리아라는 것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노래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헨델이 영국에서 작곡한 최초의 이탈리아 오페라 "리날도"는 1711년 2월 24일 초연되자마자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어 연일 초만원 사태를 빚으면서 보름동안 공연이 계속되었다. 이 오페라의 압도적인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캐스팅이 초호화 진용이었다는 점, 아름다운 아리아로 가득 차 있다는 점 이외에도 환상적인 무대장치도 큰 몫을 했다.

대본을 맡았던 힐(Aaron Hill)은 역사가이자 과학자였고 무대장치가이기도 했다. 그의 상상력이 한껏 날개를 편 환상적인 무대에서 '새들은 노래하고 미풍은 살랑거리고(Augelletti che cantate)' 가 노래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새들이 무대 위를 날아다니게 해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대본작가로는 한 때 로시(Giacomo Rossi)로 알려진 적도 있었지만, 그는 이탈리아어의 번역을 맡았을 뿐, 원래 영어의 대본을 쓴 사람은 힐이었음이 그 후 밝혀졌다.

초연이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고하고 헨델은 1713년, 1715년, 1717년 등 공연 때마다 조금씩 수정을 가했다. 그러다가 1731년에는 전면적인 개정이 이루어졌고, 그 때문에 오늘날에도 공연 또는 녹음 때마다 지휘자에 따라 여러 버전(Version)이 쓰여왔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EDRICH HANDEL,1685 ~ 1759)

그는 바흐와 함께 같은 해인 1685년 독일에서 태어나 가정의 음악적 배경은 달랐지만 음악에 대한 입문은 교회 오르가니스트로서 시작한 부분도 비슷하다. 그러나 음악공부를 반대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702년 할레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게 된다. 그렇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어 법률과 음악을 병행하다가 갤빈파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또 함부르크의 겐지마르쿠트 오페라 하우스에서 바이얼린과 챔발로 연주자로 경험을 쌓게된다.

마침내 1705년에는 오페라 <알미라>로 성공을 거둔 후 이탈리아로 연주여행을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완전히 오페라 작곡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후에 <부활> <때와 깨달음의 승리> <아그리피나> 등 10편이상을 작곡하여 독일,영국,이탈리아에서 연속적인 성공을 거두고 최소 10년이상을 탄탄대로를 걷게된다. 그러던 중 1717년 조지1세가 마련한 템스강 음악회에서 <수상악>을 연주하여 왕으로부터 신임을 이끌어 낸다. 이후 1719년에는 오페라 단체 <왕립 음악원>을 설립하고, 1727년 조지2세 대관식을 위하여 <대관식 앤텀>을 상연하고 같은 해에 영국국적(41세)을 취득한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그가 운영하던 아카데미는 점점 기울기 시작하여 10년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일시에 무너져 2년만에 완전히 문을 닫게 되는데, '페푸슈'라는 작곡가의 <거지 오페라>가 대성공한 것이 헨델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

당시 헨델에게 치우쳐 있던 관심이 한순간에 '페푸슈'에게로 쏠려버린 것이다. 그 이후 헨델은 자신의 음악적 본거지를 새로 단장한 코벤트가든극장으로 옮겨 <아리오단테> <알치나> 등의 오페라와 <알렉산드로 향연>등의 오라토리오 상연으로 경영에 복귀 하려는 노력을 해보지만 건강 악화와 경제파탄이 겹쳐 또 한번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로써 그는 두번째로 극장 문을 닫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해오던 오페라 작곡에서 이제 완전히 손을 떼고 오라토리오 작곡에만 몰두하기 시작한다.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유사하지만 대부분 종교적 소재를 가지며, 의상과 분장은 하되 연기로 무대공연은 하지 않고 음악회 형식으로 연주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는 오페라에서는 이탈리아어를 가사로 채택하여 세계를 겨냥했지만 오라토리오에서는 영어를 선택하여 영국 또는 세계 대중들을 겨냥, 친근하게 다가 갈 수 있게 하였고 음악적 수준도 중산층들이 충분히 소화할만한 곡을 배려하였다. 그때 그는 성경 드라마를 대중화 하려는 계획도 추진하였으나 Amazing Grace의 <뉴튼>에게 호된 질책을 받아 계획을 취소하기도 했다.

그후 그는 진정 신앙인으로 회복되었는지 <사울> <이집트의 이스라엘인> 등 성서를 기초로 한 작품만 작곡하였으며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이즈음 영국의 필하모닉협회(아일랜드 귀족 디셔)는 헨델에게 신작을 의뢰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작품중 가장 위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이다.

이 작품은 1742년 4월 13일 초연되었는데 공연전부터 리허설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일찍이 성공을 가늠 할 수 있었고 공연당일에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여 극장측에서 귀족들의 치장이 많은 옷차림은 삼가 해 달라는 광고를 신문에 내기도 했었다.
예상대로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수익금은 기아 양육원을 위해 쓰여졌다. 이를 계기로 그는 다시 오라토리오 작곡에 전열을 가다듬고 새로운 오라토리오 <삼손>과 <쥬다스 막카베우스> 등을 작곡하였으나, 전작 <메시아>보다는 음악적인 면과 대중성이 많이 떨어지는 작품들이다.

1753년부터는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1755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게된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의지로 지휘와 오르간연주를 근근히 하였으며 조수의 도움으로 작품 개정도 간간히 하였다. 1759년 4월 6일 코벤트가든극장에서 <메시아> 연주회를 마지막으로 4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생동안 완고한 성격과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불굴의 투사였으며 69년이란 생을 혼자 살았다.
[출처] 헨델 오페라 'Rinaldo(리날도)' 중 2막 4장 'Lascia Ch`Io Pianga(울게하소서)'|작성자 에덴

헨델의 'Rinaldo and Armida(리날도와 아르미다)'의 모티프가 된 십자군 원정

유럽의 역사에서 십자군전쟁은 당시대에는 로마 교황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서유럽 카톨릭 국가들의 이슬람 이교도에 대한 성전이었지만, 비기독교문화권 국가들에게는 침략전이었다. 이슬람 뿐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까지 침공하면서 그 의의가 더욱 퇴색했고, 정치적, 경제적 이권다툼이 극심해지기까지 하면서 많은 폐해를 낳고 실패로 끝났다.

이 영향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은 영원한 적으로 갈라서게 되고 교황권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토르쿼토 타소(Torquato Tasso 1544-1595)는 16세기 이탈리아의 시인이다. 섬세함과 멜랑콜리함을 동시에 가진 서정시를 남긴 천재작가로 그의 사후에도 작품들은 많은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창작열을 불태웠다. 바로 이 1차 십자군 전쟁(1096~1099년) 말기 예루살렘 요새탈환을 둘러싼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의 가상의 전쟁을 묘사한 서사시가 1574년작 '해방된 예루살렘'이다.

헨델의 오페라 'Rinaldo'는 바로 이 서사시를 기초로 1711년에 완성된 '오페라 세리아'이다.

(Opera Seria: 그리스신화나 고대의 영웅담을 제재로 한 엄숙하고 비극적인 이탈리아 오페라)

'Rinaldo and Armida' 대략의 줄거리

십자군 전쟁시대, 십자군 사령관 고프레도는 영웅 리날도에게 예루살렘 공략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한다.

리날도는사령관의 딸 알미레나와 사랑을 속삭였으나, 마법사 아르미다가 나타나 알미레나를 납치해 간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고프레도는 선한 마법사가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심한 리날도를 위로한다.
알미레나를 찾아 떠난 고프레도와 리날도 일행은 인어들의 유혹적인 춤이 그들의 발을 멈추게 한다.

리날도는 그녀를 구출하러 가기 위해 마법의 배를 타게 된다.

한편 마술궁전에서 왕 아르간테가 알미레나의 환심을 사려하지만, 그녀는 홀로 그 유명한 “울게 하소서”라는 애절한 아리아를 부르면서 외면한다.

이슬람 마법사인 아르미다는 배에 타고 온 리날도를 해치려 하지만 오히려 첫눈에 반하여 구애를 하고

잠시동안 변신을 통해 사랑을 이룬다.
하지만, 아르미다는 다시 리날도의 연인 알미레나를 해치려 하는 중 리날도가 막아서게 된다.

알미레나는 아버지와 연인을 다시 만난 것을 기뻐하고, 왕인 아르간테와 아르미다와 함께 벌인 결전에서 리날도의 승리로 끝나고 두 연인은 행복하게 맺어진다.

이 줄거리나 설정은 결국 십자군을 신성한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와 동일시했기에 그런지 예전에 포스팅했던 '오딧세이아'와 같은 서사시와도 또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이야기' 와도 유사성이 드러난다.


출처 :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음악 이 있는곳
글쓴이 : 보리수나무 원글보기
메모 :